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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혼자 마시는 결별주는 더 쓰다

by 해피스트 2019. 5. 25.


좋은 인연 나쁜 인연 결별은 불쾌하다.

좋은 인연이든 나쁜 인연이든
시간과 함께 일어나는 사건들의 결과를 더 이상 받아들이기 힘들 때 관계를 포기하는 것
그게 결별인듯 하다.

1년 2년 짧은 시간이면 포기라는 단어도 쓰지 않고 스쳐지나가는 인연이거니 했겠다. 
안지는 10년이 훌쩍 넘었고, 최근 몇 년간 막역하게 지내다 잦은 다툼으로 이젠 결코 좋은 인연이라고 말하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 

시간, 감정, 에너지가 순환되어야 하는 관계가 한쪽으로만 일방으로 흘러버리면 나머지 한쪽은 투자가 아니라 소비가 된다. 
허덕이게 되고 갈증을 느끼고 부정적인 감정에 젖어들게 된다. 

모든 관계는 시너지가 있어야 흥이 난다. 
그게 즐거움이고, 그게 행복이고, 그게 여유이다. 

몇 년을 그렇게 지내다 보니 이제는 그 관계가 고착되었다. 
가장 나쁜 상황은 나에 대한 기본적인 '존중'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상대는 상대대로 나에 대한 '편견'이 생겼을 테고, 나 역시 그렇지 않다고는 말하지 못할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나는 결별을 선택했다. 

좋은 인연이든 나쁜 인연이든 결별은 불쾌하다. 
매우 불쾌하다. 

혼자 결별주를 마시기로 했다. 
소주 3잔이 주량인 내가 선택한 술은 처음처럼이다. 
쉽게 살 수 있는 술 중 가장 쓴 술을 선택했다. 
참이슬을 결별주로 마시기에는 이름이 너무 참하다고 생각했다. 
결국 알기 이전의 처음으로 돌아간다는 혼자만의 다짐을 담아 처음처럼을 집어 들었다. 
쓴맛을 달래줄 마른 안주로 달짝지근한 쥐포를, 혹시 빈속을 달래야 할까 국물이 있는 튀김우동을 선택했다. 

다 마실 수 없다는 건 알고 있었는데, 반병 마시고 힘들어 쓰러졌다. 

한모금 한모금 마시면서 무슨 생각을 했더라. 

가장 쓴 술을 결별주로 선택한 이유는 그 쓴맛을 기억하고 잊지 않기 위해서 였다. 

생각은 기억나지 않는데 씁쓸함을 담은 술의 쓴맛은 기억이 난다. 
다시는 마시지 않을 것 같은 이 소주맛, 달다는 말은 참이었다. 
그런데 맛있다는 말은 거짓이었다. 
나에게는 기분 나쁜 단맛과 알콜맛만 느껴졌으니까. 

그리고 그 순간을 녹음했다. 
슬프다는 생각은 안했지만 슬펐는지 아니면 나 자신이 측은했는지, 안타까움인지 모를 눈물을 흘린 기억이 난다. 
녹음한 걸 틀고, 들을 때는 다시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어쩌지 못할 불쾌함을 결별주와 함께 씻어 냈고, 그게 어떤 기념이 됐는지도 모르겠다. 

시간이 지난 지금은 그저 담담할 따름이다. 
다시는 돌이키지도, 돌이키고 싶지도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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